내 아이 자연에서 키울 거예요

충북 옥천군 옥천읍 서대2리 일명 서당골은 20가구 중 6가구가 인근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귀촌한 가구로 되어 있다. 아즈늑한 뒷산에 아담한 들판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이곳에 금년 2월 23일 귀농한 김용관 부부의 고구마 첫 수확현장에서 귀농 첫해의 소감을 들어 보았다.

김동춘 기자(이하 기자) : 고구마가 아주 먹음직스럽네요. 귀촌한 첫 해 이신데 어떤 작물들을 농사지으셨나요?

김용관 : 고구마, 감자, 대추, 호박, 가지, 고추, 피망, 배추, 무, 수박, 아피오스, 오이, 참외, 콩, 상치, 아욱, 쑥갓 그리고 결명자를 농사지었어요. 이제 결명자하구 김장 배추와 무우만 수확하면 됩니다.

김은주 : 벽난로에 감자를 구워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오늘 고구마 구워 드시고 가세요. (웃음)

* 이 많은 작물을 숨도 쉬지 않고 쏟아내며 뿌듯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내기보다는 전문 농업인의 냄새가 물씬 풍기었고 옆에 있던 부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고구마 수확하면서 함박웃음을 지우지 못하는 김용관(45, 대전 대성고 미술교사)씨와 부인 김은주(35, 전업주부)씨

기자 : 직장은 대전인데 어떻게 귀촌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까?

김용관 : 제 그림의 주제가 농촌이라 농촌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도시에서만 성장하여 농촌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며 농촌의 여유와 좋은 자연 환경을 체험하면서 귀촌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기자 : 부인께서는 결혼 1년만에 직장까지 그만두고 귀촌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김은주 : 아니예요! 결혼 전부터 남편이 귀촌하자고 해서 동의했어요. 농사를 지은 경험은 없었지만 단독주택에서 자라며 부모님께서 마당에 텃밭을 일구는 것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쉽게 결정했어요.

기자 : 아이가 아직 어린데(21개월)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아이의 교육문제가 걸리셨을텐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실 계획이신가요?

김용관 : 제가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는 지식위주의 삶보다 느긋함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게 하고 싶습니다. 얽매인 도시 아이들의 단순 지식 습득을 생각했으면 농촌으로 못왔죠. 그리고 농촌이 무조건 교육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도시보다 교육적 환경이 더 좋은 것도 많습니다. 학교 폭력 같은 문제가 농촌에서 문제가 된 적이 있나요. 학교 시설이나 학교 프로그램은 오히려 더 좋습니다. 도시는 특정아이들만 혜택을 받는데 농촌은 소수인원이므로 모든 학생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직장 동료 아이들과 마당을 맘껏 뛰며 놀고 있는 영유의 환한 미소가 싱그럽기만 하다.
김은주 : 귀촌 전에 교육에 대해 사전 조사를 철저히 했습니다. 이곳은 방과후학교도 무료이고 예체능교육도 활성화되어 있어 모든 학생이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무료로 배울 수 있어요. 그리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인근에 있어 어릴 적 친구와 오랫동안 추억을 쌓을 수 있어 정서적으로도 좋구요. 학업적인 것은 인강(인터넷 강의)을 통해서 채우면 됩니다.

기자 : 귀촌 1년만에 농촌 예찬론자가 되셨군요. 그래도 농촌에서 대학 진학 문제가 있지 않나요?

김용관 : 좋은 대학은 자신이 하고픈 일을 배울 수 있는 것이고요. 입시적으로 농어촌전형이 있어 전혀 불리하지 않아요. 우리 아이가 꼭 서울대 가야 행복하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정보화 시대에 입시정보가 농촌이라고 불리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사람들이 괜히 농촌은 부족할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있지요.

* 아이의 교육 문제에 부부는 한목소리로 아이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취재 중에 주말을 이용해 놀러온 직장 동료의 아이들과 김씨의 아이가 마당에서 뛰어 놀고 있었다.

기자 : 귀촌 후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김용관 : 2월에 이사를 왔고 집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추위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벽난로를 장만하였고, 바람막이를 설치하여 겨울 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 벌목한 산에 가서 직접 참나무도 구해다가 쌓아 뒀습니다.

   
▲ 집 뒷켠에 가득 쌓인 화목과 바람막이를 보니 올 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것 같다.

김은주 : 밤에 바깥출입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너무 깜깜해 무서워서 밖을 나가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태양열 가로등을 곳곳에 설치해서 오히려 공원 같이 아늑하기만 해요.
   

▲ 집 뒤 텃밭에서 상치를 뽑고 있던 최성욱씨
부인이 사진을 찍자 쑥스러워 얼굴을 돌리고 있다.


김용관 : 사람이 너무 없어 한적할 것 같았는데 주말마다 직장동료와 지인들이 아이들과 함께 와서 함께 하고 가기에 오히려 이전보다 주변 사람들과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이날도 직장동료인 최성욱씨(43. 대전 대성고 교사) 가족이 와서 함께 하고 있었다.

기자 : 귀촌하신 분 중에는 후회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두 분은 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귀촌 후 좋았던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은주 : 마당이 생기고, 피부염도 없어졌고, 큰 개도 기를 수 있고 좋은게 너무 많아 다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에요. 아! 이웃들과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너무 좋고 정이 느껴집니다.

기자 : 귀촌한 사람들이 동네사람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어떠셨나요?

김용관 : 하기 나름이죠. 서로 나누고 얘기하기 바빠요. 동네에 노인 분들만 계시지만 농작물을 수확하시면 한 박스씩 주시고 이사 왔다고 화장지 사들고 오실 정도로 잘해주세요.

기자 : 동네 분들이 먼저 다가오시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김용관 : 물론이죠. 처음 이사와서 한집한집 찾아가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렸고 저희 부모님 같이 살갑게 대했죠. 가족같이 내가 먼저 느끼면 그 분들도 그렇게 해주시는 것 아니겠어요.

기자 : 동네분들 얘기에 잠시 이야기가 빗나갔는데 사모님께서 느끼시기에 귀촌 후 남편에게 나타난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김은주 : 너무 부지런해졌어요. 새벽부터 화목작업, 텃밭작업 등 너무 부지런해졌어요. 100키로가 넘던 몸이 10키로 이상 빠져 너무 건장해졌어요. (웃음)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밤늦은 귀가가 없어지고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식사하고 대화할 수 있어 너무 좋아요.

* 이때 옆에 있던 직장동료 최성욱씨가 ‘직장 회식 마감은 용관씨 귀가 시간에 다 맞춘다’고 거들었다.

기자 : 남편이 보시기에 부인에게 나타난 변화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김용관 : (웃음) 날마다 밥상이 바뀌어요. 맛있는 거 많이 해줍니다. 그리고 부지런해졌어요. 가사외에 집 꾸미기와 텃밭 가꾸기 등 정말 부지런해졌어요. 무엇보다 좋은 건 잔소리가 없어졌어요.

* 서로의 칭찬에 머쓱해질만한데도 부부는 연신 서로 쳐다보며 눈웃음짓기에 바빳다.

기자 : 마지막으로 귀촌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김용관 : 귀촌의 가장 중요한 것은 발품을 많이 팔아 내가 가장 원하던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1년 반 정도 발품을 팔아 이곳으로 정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집수리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합니다. 저는 급하게 이사부터 해서 집 개조와 맞물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5-6개월 정도 할 일이 쌓여서 정말 힘들었어요. 하나하나 추억이 되었지만요. (웃음)

   
▲ 10년이 넘은 구옥이 6개월의 개조를 거쳐 살고싶은 집으로 변신한 모습니다. 그 동안의 노력이 아로새겨진 꿈의 결실로 동네에서는 부잣집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기자 : 이곳에 계속 정착하실 생각이십니까?

은주씨 : 이젠 안가죠. 친구가 없어서 외로울 줄 알았는데 이젠 친구를 만나러 갈 일이 없어요. 친구들이 찾아오니까요.

새내기 귀촌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날이 저물어 버렸다. 도시에서 전원생활의 낭만만 꿈꾸다 은퇴 후 귀촌하여 적응을 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를 보면서 미리 준비하고 실천하는 이들 부부의 모습에서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우쳤다. 서로 쳐다볼 때마다 끊이지 않았던 눈웃음에서 번지는 행복이 너무나 나를 행복하게 한 하루였다.

   
▲ 태양열 가로등이 날이 저물자 환하게 집 주위를 비추고 있어 산 바로 아랫집이지만 아늑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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