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여, 꽃의 여왕이여.”
독일 시인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가 아니어도 장미가 꽃의 여왕인 것은 누구나 안다.
그리스 신화 속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로즈라는 섬에 씨를 뿌리며 태어났다는 장미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늘 사랑과 기쁨, 청춘의 상징이었다. 어느 꽃도 대신하기 어려운 아름다움과 향기로 인류의 가슴을 환하게 밝혀온 장미. 귀농부부 신윤화·정윤숙 씨는 집집마다 식탁에 장미 한 송이씩은 꽂혀 있는 나라, 사랑 가득한 세상을 꿈꾸며 꽃을 키우고 있다. 

그늘 속에서 다시 가꾸는 희망

졸업과 입학 시즌이다. 축하 자리에 빼놓을 수 없는 게 꽃이다 보니 부부를 만나러 경남 김해로 가는 길에도 벌써 세 군데서나 꽃 파는 상인들이 보인다. 하지만 정작 화훼농가들은 요즘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는 기사도 검색된다. “조화와 중국산에 밀려 한해 수입 대부분을 책임지던 특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 씨 부부의 장미 농장도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3대 화훼단지 중 하나인 이곳 대동 화훼 마을은 따뜻한 기후, 부산항과 가까운 지리적 여건에 힘입어 전통적으로 수출이 주를 이루던 곳이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촉발된 일본의 경기 둔화로 수출길이 막혔고 부부의 장미 농장도 큰 변화의 파고에 맞서 새로운 미래를 헤쳐 나가는 중이다.

 

“귀농 이후 이웃 농가들처럼 주로 일본 시장을 목표로 장미를 재배해왔습니다. 수출 목적의 농가이다 보니 지원 제도도 든든했고 초기에는 매달 따로 적금을 부을 만큼 이익이 괜찮았지요. 그런데 예상 못한 자연 재해가 나면서 우리뿐만 아니라 이웃의 화훼 농가 대부분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김해 대동 화훼마을은 한때 전국 화훼의 70%가 생산될 만큼 비중이 컸다. 하지만 2014년 209ha이던 재배 면적이 지난해에는 139ha까지 감소할 만큼 고전 중이다.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해온 비용과 달리 10~15년 넘게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가격, 여전히 꽃을 사치품이나 과소비로 여기는 세간의 인식 역시 화훼 농가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신 씨 부부는 그런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화훼 단지에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애쓰는 몇 안 되는 농가 중 하나다.

 

평범한 식탁마다 한두 송이가 자연스런 사회

겨울과 봄의 중간에서 어정쩡한 바깥 풍경과 달리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흰색 등 형형색색의 꽃밭이 펼쳐지는 부부의 장미 농장은 늘 젊고 싱싱한 오월의 모습이다. 약 6600㎡의 대지에서는 미스홀랜드, 페니레인, 핑크파티, 아마룰라, 모네, 레드폴 등 이름도 아름다운 예닐곱 품종의 장미가 연중 꽃을 피운다.

부부는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고향인 이곳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사무자동화기기 회사에 다니며 익힌 경험으로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는데 때마침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며 타격을 받았다. 앞서 장미 농사를 짓고 있던 신 씨의 형이 “땅은 거짓말 안 한다”며 귀농을 권유했다. 딱 10년만 고생해보자는 각오로 형의 농장에서 일손을 도우며 장미 재배를 익혔고, 2006년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농장을 일궜다.

 

“매일매일 꽃과 순을 따줘야 해서 쉬는 날이 없기는 하지만 천성적으로 꽃과 나무를 좋아해서인지 육체적으로 그리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니 스트레스가 덜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늘 사람이 아니라 자연을 상대로 하는 직업을 가져보라고 권하고 있지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부가 끝끝내 장미 하나만을 고집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작목을 바꿔야 하나 고민도 해봤지만 부부는 2013년 적잖은 돈을 들여 내수 중심의 모종으로 온실을 채웠다. 수출 부진으로 어려움에 빠진 우리나라 화훼의 새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10년 넘게 지역의 수경장미연구회 일을 도맡으며 우리나라 화훼 산의 현재와 미래를 치열하게 고민해온 신 씨는 비단 농사뿐만 아니라 꽃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바꾸는 데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꽃꽂이 교양수업 등으로 유년기부터 꽃과 친숙해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힘줘 말하곤 한다. 그의 노력은 올해 초 김해시가 수립한 화훼산업 장기발전 종합계획에도 반영됐다. 꽃 소비 촉진을 위해 유치원과 초등학교 등에서 꽃꽂이 교육을 시행키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꽃을 특별한 날에만 소비하는 사치품 정도로 생각하지만 문화 선진국들은 다릅니다. 길거리 어디서나 꽃집을 볼 수 있고 가정마다 싱싱한 꽃 한두 송이씩은 늘 꽂혀 있지요.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 퇴근길에 꽃 한 송이 사서 식탁에 꽃을 수 있는 분위기, 그런 따뜻하고 촉촉한 정서를 가진 사회로 변화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신윤화 & 정윤숙 부부가 말하는 귀농귀촌 TIP!

1. 귀농은 보고 일이 아니다 

어떤 농사든 일은 힘들고 농산물은 제값을 받지 못한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계획이 있고 즐길 마음이 있다면 괜찮지만 돈을 먼저 생각하면 느긋하고 긍정적이라 자신했던 성격까지 변할 만큼 어려운 일이 귀농이니 신중히 생각하자.

 

2. 자연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농사는 근본적으로 자연의 힘으로 짓는다. 온실에서 꽃을 키우지만 일조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생산량이 예상대로 안 될 때가 많다. 잘 나가던 수입국의 느닷없는 자연재해도 마찬가지다. 늘 변수에 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3 .자본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다시 생각하라

노지에 적당히 작물을 키우던 시절을 기억하고 ‘할 것 없으면 농사나 짓지’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요즘 농업은 시설 재배로 갈 수밖에 없는데 초기의 큰 자금은 물론이고 연중 경비가 필요하다. 또 어느 시점에는 전면적인 재투자도 필요하다. 농사라기보다 사업을 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린매거진 2016년 3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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