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을 만나면 퇴직 후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이야기하곤 한다. 많은 친구들이 시골에 가서 인생 2막을 하겠다며 전문가랍시고 나에게 조언을 구한다.

 

바야흐로 귀농·귀촌이 대세인 시대다. 인생 제2막의 삶을 농촌에서 보내려는 베이비붐 세대로부터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는 젊은이들까지 생업과 삶의 배경을 농촌으로 옮기려는 사람들의 연령도, 의도도 다양해지고 있다.  귀농·귀촌이 도시생활의 각박함과 치열함을 농촌으로 그대로 옮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행가 가사처럼 낭만적으로만 접근해서도 안 된다. 준비 안 된 귀농은 실패 가능성을 더해, 가뜩이나 어려운 농촌사회에 또 다른 어려움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귀농을 위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고 있고,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귀농·귀촌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도시농업은 귀농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사람부터, 아직까지는 귀농을 생각하지 않는 잠재적 귀농인까지 농촌으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침 출근 전에 작은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집 앞 화단에서 꽃을 키우며 가을이 되면 이웃과 체험 팀을 만들어 함께 탐스러운 과일을 수확하는 일상을 갖는 것은 농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최근 붐을 이루는 도시농업은 농업이 가진 여러 순기능을 도심으로 도입하는 역할을 한다.

국회의사당 잔디밭 일부를 걷어내고 텃밭을 일구고 시민들과 함께 감자를 키우고 나눠 먹으며, 어린 아이들이 동네 놀이터 빈터에 꽃을 심고 뛰어 논다. 학생들이 학교 옥상에서 식물을 키우며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노인들은 마을 자투리 공간에 꽃과 채소를 가꾸며 삶의 지혜를 나누고 휴식을 얻는다. 한줌의 흙과 따스한 햇살 속에 흘리는 땀방울은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회복시켜 준다. 이처럼 지금 농업은 도시 안에 사라졌던 공동체 의식을 살려내고 건강한 자연환경을 되돌리고 있다. 산업 발전의 이름으로 너무 쉽게 놓쳐버린 삶의 가치에 농업은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고 있다. 

 

옛 선조들의 산수화를 감상할 때 몇 가지 관점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눈으로 보는 경치다. 그야말로 눈앞에 전개되는 산수 그대로의 모습이다. 두 번째는 그림 속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갖게 되는 감동이다. 그러나 옛 성현들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감동에 머무르지 않고, 산수화 속에서 자연의 섭리와 그와 함께 하는 인간의 도리를 바라봤다고 한다.  귀농·귀촌을 바라보는 관점도 옛 선조들이 산수화를 감상하듯 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시도하고,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귀농에 실패한다. 밖에서 바라보는 농촌 모습은 낭만적일 수 있으나 귀농인에게 있어서 농촌은 살아내야만 하는 삶이자 생존의 터전이다.  도시에서의 경쟁과 각박함은 아닐지라도 농촌의 삶이라고 그림 속에서 보이는 한적함과 여유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귀농·귀촌의 시작이 도시민 눈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자연과 농촌에 대한 동경이었다면, 이를 넘어 농촌과의 교감 속에서 또 다른 삶의 가치와 감동으로 이어지며 결국 농촌이 완전한 일상으로 완성돼야만 비로소 성공적인 귀농·귀촌이 될 것이다.

 

도시민이 집주변 빈터에 심어 가꾸는 작은 씨앗이 농촌으로 연결되는 큰 나무로 자라나길 기대해 본다.  끊임없는 경쟁과 주변을 돌볼 여유 없는 바쁜 일상생활일지라도 작은 도시농업을 실천하며 여유를 느끼고 새로운 삶의 가치도 한번쯤 되돌아봤으면 한다.

2015-12-24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고관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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