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머니가 음식 만드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고 곧잘 흉내 냈다. 손재주가 있던 아이에게 요리는 일이 아닌 놀이었다. 해마다 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교사의 길 대신 새로움을 탐구하고 전파하는 농촌지도사를 택했다. 현장을 누비던 지도사에서 홀연히 연구자로 변신했다. 농촌진흥청 특허 중 첫 해외기술이전 사례를 기록하고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바로 굳지 않는 떡의 원천기술을 개발한 국립농업과학원 한귀정 박사의 이야기다. 

떡은 예부터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마음을 전해온 음식이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떡은 하루만 지나도 딱딱하게 굳어버리지만 굳지 않는 떡 기술을 적용하면 두 달이 넘도록 쫄깃함과 말랑함이 살아있다. 떡의 주재료인 쌀, 물, 소금 이외에는 화학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았다. 한귀정 박사의 굳지 않는 떡에는 어떤 마법이 존재하는 것일까? 

2000년 역사의 떡, 산업화·대중화 열쇠를 찾다 

“우리나라에 떡집이 많을까요? 빵집이 많을까요?”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 한 박사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자신만만하게 빵집이라고 대답했지만 결과는 땡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떡집이 1만8000개, 빵집은 1만1000개가 등록돼 있단다. 떡 시장은 1조4000억원, 빵 시장은 3조6000억원 수준으로 매출 격차도 크다. 한 박사는 2000년 역사를 갖고 있는 떡이 6.25 이후 본격 도입된 빵보다 발전하지 못한 근본 원인을 ‘저장성’에서 찾았다. 

빵은 하루부터 한 달까지 유통기간이 다양하기에 낱개 포장과 함께 서비스 산업이 발전했다. 반면 떡은 전날 주문받아 밤샘 작업으로 생산하고 당일 배송·판매한다. 하루만 지나도 굳는 특성은 떡 산업을 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시간, 강도, 각도, 온도…할머니의 떡에 답이 있었다 

“처음부터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어요.” 한 박사는 떡의 쫄깃함을 유지하기 위해 떡메로 치는 과정인 ‘펀칭 기법’과 ‘보습성 유지 기법’을 과학화, 현대화하여 원천기술을 확립했다.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떡집에서 쌀가루를 섞어주는 용도로만 사용하던 펀칭기를 이용해 떡메치는 과정을 기계적으로 풀어냈다. 비밀은 ‘시간, 강도, 섞어주는 각도, 온도’ 네 가지 요소의 궁합이다. 한 박사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떡에 담겨있던 원리를 굳지 않는 떡 기술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기술은 쌀 뿐만이 아닌 멥쌀, 찹쌀, 현미, 잡곡, 옥수수, 보리 등 모든 곡류에 적용이 가능하다. 

48시간의 기다림과 복도에 울리던 심장박동 소리

실험은 떡을 제조하고 48시간 뒤 굳은 정도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결과는 예상보다 빨리, 또 극적으로 나타났다. 800여 번째 실험에서 굳지 않는 결과물이 나왔다. 48시간 후 다시 같은 결과가 나왔다. 마지막 3번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또 다시 48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한 박사는 이 시간이 두 달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세 번째 결과를 확인하러 실험실에 가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쳤어요. 복도에 심장박동 소리가 울리는 게 귀로 들렸죠.” 그렇게 굳지 않는 떡의 원천기술이 탄생했다. 2010년의 이야기다. 

이후 한 박사는 굳지 않는 떡의 원천기술로 국내외 특허를 획득하고 290여 건의 기술이전을 성사시켰다.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졌다. 국토가 넓어 배송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중국은 물론 떡을 냉장보관·판매해야 한다는 식품위생법 규정이 있는 미국에서도 굳지 않는 떡에 대한 관심이 컸다. 관련 기술은 미국, 중국, 인도네시아에 이전돼 농진청의 특허 중 처음으로 해외에 이전된 사례로 등록됐다. 

고정관념 깨기, 모든 순간 고비는 있다 

모든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고정관념과 싸워야 했다. “가정집에서 전기밥솥으로 밥을 해도 쌀의 상태, 미세한 물의 양 등에 따라 매일 아주 조금씩 밥의 상태가 달라져요. 떡 역시 기계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완성도와 질감은 천차만별이죠.” 떡이 굳어서 못 팔고 버리던 손실비용 문제를 해결했음에도 산업현장에서는 추가된 펀칭 공정을 까다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박사의 현장 보급을 위한 노력으로 인식이 점차 개선됐다. 이제 굳지 않는 떡 기술은 단순한 떡을 넘어 떡 케이크, 컵 떡국, 애완동물용 껌, 라이스클레이와 같은 놀이용품 등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인생의 멘토 아버지와 이한기 소장님 

아무리 힘든 일도 100일은 버텨보자. 한 박사의 좌우명은 ‘작심 100일’이다. 아버지는 어린 그에게 무슨 일이든 100일은 해보라고 늘 말씀하셨다. 피아노, 태권도를 비롯해 처음에는 재미없고 어렵게 느껴지던 일들이 100일만 참으면 신기하게 재미가 붙었다. 각종 운동과 바둑에 이어 그의 22번째 취미가 된 마라톤 역시 작심 100일 덕에 풀코스를 3번이나 완주했다. 

아버지는 한 박사의 정신적 멘토다. 학교 교사가 아닌 지도직을 선택할 때도 유일하게 찬성해 주신 분이다. 또 한 분, 연구사업에서 좋은 결과가 있어야 좋은 지도사업이 가능하다 말씀하시며 직장인으로서 본보기가 되어주신 이한기 소장님 역시 존경하는 멘토다. 

“내가 하고 싶은 연구 50%는 10년 계획으로 꾸준히 하고 50%는 조직의 미션에 따라 성실하게 진행하면 모두 성공할 수 있어요. 또 나 혼자 잘되는 것보다 더불어 잘 될 수 있도록 주변을 돌아보면 좋겠어요.” 농진청에 몸담은 지 28년이 된 그는 후배들에게도 작심 100일과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좋은 연구결과가 실용화가 되기까진 넘어야할 산이 많아요. 나 혼자만이 아닌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가 접해지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해답이 나오는 법입니다.” 

세계인이 우리 전통식품 즐길 수 있도록! 

“이론은 밝지만 실제에서 약한 경우도 있는데 제 경우는 연구직이 아닌 지도직으로 농촌 현장을 체험한 것이 실용적인 연구결과를 창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또 연구결과를 가정 살림에 직접 적용해 보면 보완점이 보이더라구요.”(웃음)

연구자로서 한 박사의 최종 목표는 전통식품의 세계화다. 세계인이 우리의 전통식품을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김치 소스, 양념장과 같이 유통과 활용이 간편한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굳지 않는 떡으로 만족하지 않고 달라붙지 않는 떡, 첨가제를 넣지 않고 저장성을 향상시키는 떡 등 후속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또 국민 누구나가 떡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기기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의 바람처럼 버튼만 누르면 떡을 만들 수 있는 일체형 떡 제병기가 국민들의 식탁 위에 올라오길 기대해 본다.

<그린매거진 2015년 0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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